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2.3 | 문화현장 [여성과문화]
여성과문화여자는 가방끈이 길어지면 취업문이 좁아진다?극심한 성차별 취업난 속에 놓인 여대생들
황경신 문화저널 기자(2003-03-26 16:56:09)

 지난달 22일 전북대를 졸업한 이숙희(가명.23세)씨. 이씨는 방학동안 얼굴 보기 힘들었던 친구들을 졸업식장에서 만났지만 과 친구들이 하나같이 졸업을 두고 하는 말은 "행복 끝, 불행 시작"이었다. 이제 진정한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기쁨보다는 취업 걱정에 하늘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대부분의 과 동기들이 대학원 진학 아니면 학원 강사로 취직해 있었지만 그것을 취업으로 받아들이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이씨가 치른 취업과의 전쟁은 다른 여학생들의 그것과 같다. 4학년때부터는 학과 공부도 뒤로 한채 취업에만 매달렸다. 한번도 거르지 않고 치른 덕분에 토익점수는 8백점을 넘었고, 한문능력검정시험, 정보사자격증, 논술교사자격증 등 국문학을 전공한 이씨는 관련 분야에 있는 자격증도 다 따냈다. 하지만 졸업할때까지 취업이 안됐을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는 "공개경쟁은 시간낭비에 불과하니 연줄을 찾는 것이 더 빠르다"는 조언뿐이었다. 심지어는 여자는 외모가 최고니 그쪽으로 투자하라고 농담반 진담반, 충고 아닌 충고를 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이씨는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니고 취업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 것도 아닌데, 앞길이 막막해 부모님께 죄송할 뿐이다"며 "하지만 다같이 어려우면 모를까 똑같이 공부하고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여학생들에게 기회조차 없는 어려운 취업현실에 너무 화가 난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학과 사무실로 들어오는 기업체의 추천서는 아예 여학생들에게는 기회 조차 없으며 성적순으로 배부했을 경우에 남학생에게 양보하라는 '압력'을 받거나 현실을 아는 여학생들이 남학생에게 넘기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헌법재판소가 내렸던 '군필자에 대한 가산점 위헌 판결'이 백일몽 같은 에피소드로 끝났지만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는 명제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는 여성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취업난 속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전국여성노동조합에서 서울과 부산의 4년제 여대생 4백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2000년 3월) 내용중, 모집과정에서의 성차별에 대한 응답자의 반수에 해당하는 50.3%가 '신체 및 용모제한' 성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직종제한'이라고 응답한 응답자도 48%로 응답률이 높았고, 연령제한(39.6%), 군가산점제(32.6%), 광고와는 다르게 남자만 모집한 경우(22.9%)순으로 여러 불평등 사례가 조사되었다.
이는 기업체나 그 밖의 고용단체에서 취업하려는 여성이 자신이 지닌 자질만을 가지고 평가되지 않음을 뜻한다. 즉 여성은 그 자신이 가진 능력 이외의 것들로도 평가받을 수 있고, 그러한 가운데 불평등한 피해 사례가 얼마든지 속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여성들의 취업은 그 학력이 높아질수록, 전문성이 커질수록 더 힘든 것으로 나타난다.
동아일보 자료에 의하면 80년 대학 졸업정원제 이후 여학생의 대학 진학은 급증했다. 80년 1만5천800명이던 여자 대졸자가 85년 2.7배로 늘었으며 전체 대학 졸업생 가운데 여학생 비율도 30%에서 35%로 늘어났다. 이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여자 박사가 '폭발'했다. 80년 국내외에서 50명밖에 박사를 받지 못했지만 2000년에는 1503명으로 30배나 증가했을 정도다. 해방 이후 배출된 여자박사 1만2천5백명 가운데 42.5%가 대학 교수가 됐고 40%인 5천명은 신분이 불안정한 시간강사나 결국 취업을 포기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자 교수는 연평균 3백40명 가량 채용되는데 매년 6백40명의 박사가 배출돼 대학에 흡수되지 못한 박사들이 누적되고 있다. 최근 3년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21개 주요 대학에서 배출된 박사는 3천9백17명인데, 99년의 경우 미취업률이 여자 66%, 남자 35.1%로 여자가 2배나 높은 사실은 여성 취업난을 반영하고 있다.
더 많이 배울수록, 전문직에 접근할수록 성차별이 적으리라는 우리의 기대는 여기서 한번 주춤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교수사회나 전문성을 중요시하는 직업사회 일수록 더욱더 학연과 지연, 성별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그러한 사회적 네트워크과 파워가 부족한 여성들은 더더욱 그 접근기회를 차단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형옥의 논문 {고학력 여성의 '하향취업'에 관한 연구}를 보면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와도 여자졸업생은 남자 졸업생에 비해 더 낮은 연봉과 더 작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런 하향취업으로 여성들은 자신의 업무에 만족하기 어려워 결과적으로 불만족스러운 고용경험으로 잦은 이직과 노동시장의 이탈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실업자들에게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눈을 낮추면 어디든 취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같은 조건의 남성들보다 낮은 지위를 얻는 것이 공공연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직업을 찾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여성의 취업문제는 더 이상 방관할 것이 아니라 투명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더욱 말해주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