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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 | 문화현장
[문화현장] 고은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한 학술 ...
관리자(2011-01-06 14:35:28)

고은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한 학술 심포지엄 (12월 9일)군산대학교 


 50년 시력(詩歷) 인생, 격정적 삶과 문학

 “비록 우리가 몇가지 가진 것 없어도/ 바람 한점 없이/ 지는 나뭇잎새의 모습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의 소리들을 일이다/…/ 우리도 그것들이 우리 따르듯 따라서/ 무정한 것 아닌 몸으로 살다 갈 일이다.”-「세노야」중에서 서정적 체질과 서사적 열망의 만남 우리 시단의 거목 고은 시인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다. 

특히 시인의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는 해마다 유력한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시인의 생가 등을 복원,문화자원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현재 군산시는 시인의 작품세계 및 인물에 대한 재조명, 생가 복원, 문학관 건립 등을 추진 계획에 있다.지난 12월 9일, 군산문화원의 주최로‘시인 고은 선생의 삶과 문학에 대한 학술 심포지엄’이 군산대학교 해양과학대학에서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와 도종환 시인이 발제자로 나섰고 이복웅 군산문화원장과 전정구 전북대교수, 류보선 군산대교수, 강연호 원광대교수가 토론자로 참가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고은 시인의 작품과 인물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그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실존의 모험, 대지의 서사’를 주제로 첫 발제를 맡은 염무웅영남대 명예교수는“고은 시인은 한국문단사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작품을 생산한 분”이라며“그는 서정시인인 동시에 완강한 서사적 욕구를 지닌 작가”라고 평가했다.

염 교수는 고은 시인의 시의 양적 방대성에 대해“반세기가넘도록 지속된 언어와의 또는 언어의 불완전성과의 불굴의투쟁의 소산”이라며“시인이 사용하는 어휘나 조사법, 수사법들은 흔한 상식적 평면성을 뛰어넘는 독자의 안이한 접근을 차단하고 교란시키는데 이러한 시인의 초기시는 현세적자연과 인생의 끝없는 소멸작용에 대한 필사적인 자기 방어”라고 말했다.

즉 시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세계는 나타남과 사라짐의 영원한 반복이 이뤄지는 미완성적 공간으로 시인의 시는 무한생멸이 우주적 과정에서 시인에 의해 순간적으로 붙잡혀 언어의 형태로 응결된 가변성 그 자체인 것이다.때문에 시인의 시적 언어는 필사적으로 순간의 포착에 매달리고 있다.

염 교수는“고은 시인의 많은 시들이 풍경을 노래하면서도 정지된 장면의 공간적 재구성에 무관심것은 당연하다”며“모든 가시적 자연은 소멸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허상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염 교수는 1970년대 이후 시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그는“197년대 이래 수십년 격변의 시대를 통과하면서도 시인의 문학은 역사의 속박에 기꺼이 자신의 온몸을 헌납해 왔다”며“그러나 가장 격렬한 현실참여의 순간에도 시인은 그것과 상반된 초월적 계기 즉 침묵과 은닉의 기술을 내버린 적 없다”고 했다.

또한 그는 최근 반세기 동안 시인이 심혈을 기울여 창작한대작『백두산』과『만인보』에 대해서는 두 작품의 기획이 동일한 근원에서 출발한 것임에도 문학적 형상화의 방식에서는 아주 대조적인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염 교수는“서사시『백두산』이 사람을 총체화하는 것인 반면『만인보』는 민족을 개체의 생명성으로부터 귀납하는 작품”으로“오늘의 시점에서 돌아볼 때 인간의 총체성을 목표로했던『백두산』이 사실상 미완으로 남겨진 것과 달리 개체의생명성으로부터 민족을 귀납하고자 했던『만인보』가 마침내우람한 성취에 이른 것은 역사현실의 상황과 문학형식의 선택 사이에 개재된 연관의 불가피성을 확인케 하는 것”이라고주장했다. 

영원한 현역시인 이어‘유목의 정신, 백척간두의 삶’을 주제발표한 도종환 시인은“고은 시인 스스로가 자신을‘난세의 자식’이라고 말했다”며“어렸을 적 고은은 친일파 교장을 거부하는 동맹휴학주동자이자 16살 때『한하운시초』를 주워 읽고 시인의 꿈을키운 문학소년”이었다고 시인의 어린 시절을 소개했다.

그러나 1951년 18살의 나이에 6.25 전쟁을 겪은 고은 시인은 이후 허무와 환희의 축제로 밤을 지새다 그 허무주의의절정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마침내 죽음을 통해 거듭나기도했다.도 시인은 김명인 씨의 말을 빌리며“고은 시인의 허무주의는 죽음 지향과 삶 지향과의 연환성, 소멸과 생장의 연환성의 관점에서 고은의 허무주의를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1970년대에 이르자 고은 시인은 떠도는 자의 꿈에서 벗어나머무는 자의 현실로 돌아왔다. 

도 시인은“앞의 고은 시인이허무주의자였다면 뒤의 시인은 혁명가”라며“그러나 선승도고은이고, 허무주의자도 고은이고, 혁명가도 고은이지만, 그어느 것도 아니면서 그 모든 것이 또한 시인 고은”이라고 평했다.또한 그는“고은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시인”이라며“그의내부에는 유목의 정신이 꿈틀거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삶을늘 백척간두로 몰고 간다”고 설명했다.한편 이날 좌장을 맡은 이 원장은“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군산에서 열린 심포지엄이라 더욱 뜻 깊다”며“앞으로 고은 시인의 생가 복원사업과 기념관 건립을 어떻게 풀고 이뤄낼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고은 시인은 193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1960년 첫시집『피안감성(彼岸感性)』을 발표하고 시인으로서 본격적으로활동에 나선 후 시집『문의마을에 가서』, 『조국의 별』, ‘네눈동자’를 비롯해『이중섭평전』등 1백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발표했다. 최근에는 25년에 걸쳐 완성한 대서사시『만인보』를 탈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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