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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3 | 문화현장
128회 백제기행을 다녀와서
관리자(2011-03-04 18:31:40)

128회 백제기행을 다녀와서 


예술에 대한 통념을 다시 생각하다 - 박진희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화이론 전공


2월의 어느 토요일 제128회 마당 백제기행, 아홉 번째 예술기행에 우연찮게 참가하게 됐다. 정해진 일정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델피르와 친구들>이라고 하는 사진전관람과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민들레 바람되어>라는 연극작품 관람 두 가지.나는 이날 일정에 참여하면서‘예술’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게 되는 통념과 실제로 예술을 접할때 나타나는 우리들의 무의식적인 예술 수용 태도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기회를 가졌다.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다른 예술 매체인사진과 연극에 대해 생각해보고 영화를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진전? 어떻게 봐야 잘 봤다고 할까? 


<델피르와 친구들>전은 사진계의‘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아트 디렉터 로베르 델피르(Robert Delpire)의 사진인생 60년을 기념하여 그의 친구들이 헌정한 전시다. 2009년 아를사진페스티벌을 시작으로 2010년 유럽사진미술관에서 대대적인 전시를 마친 후 해외 순회전시의 첫 순서로 한국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사진전시회이다.이번 전시회에는 델피르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우리에게도많이 알려진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필두로 로버트프랭크, 로베르 두아노, 윌리엄 클라인, 헬무트 뉴튼, 레이몽 드파르동, 제인 에벌릿 앳우드, 미셸 반던 에이크하우트 등의 주옥같은 오리지널 프린트 185점과 150여권의 사진집, 4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사진작품집 출판인이자 전시회 기획자, 영화 제작자, 편집자, 광고 제작자였던 델피르의 평생에 걸친 업적들을 일부나마 한눈에 훑어볼 수 있도록 압축한 전시회라고 할 수 있었다.전시회의 면면은 이러하나 전시회에 가기에 앞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실제로 전시회에 가서 내가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점이었다. 평소에 사진을 많이 봐온 것이 아니고, 관련 지식도 많은 것이 아닌 상태에서 과연 1~2시간 내외(길면 3시간)의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전시회에 가서 그 사진들을 이해할 수있을까하는 의구심 내지 조바심이 들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조바심은 비단 사진전시회 뿐 아니라 현대예술의 범주에 들어있는모든 예술을 접하게 되는 일반인들이 가진 말 못할 사정일 것이다.하지만 일단 그런 전시회에 가게 되면 일단은 열심히 작품을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작품을 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인데누군가가 분석해놓은 작품의‘해석’에 의지해 작품을 살펴보거나, 혹은 자기 자신만의 이런저런 기준들로 작품을 열심히 분석해보는 것이다. 그 후 전시회를 다 돌고 나면 전리품의 일종으로전시회 관련 굳즈(Goods)를 사서 집에 오는 길에 한번 살펴본뒤 집에 가져가서는 책장 속에 소중히 모셔두게 된다.


나 역시 전시회에 가면 그러한 행동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전시회를 돌고 오면 안타깝게도 그다지 특별한 기억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선택한 관람 방식은 맘에 드는 이미지가 있으면‘내가 속한 대열에서 낙오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그 이미지를 오랜 시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 이미지를 본 순간의 느낌과 인상들을 간직해 오는 방식이었다.덕분에 적어도 몇몇 작품들에 대해서는 나만의 인상을 가질 수있게 되었다.전시회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은 델피르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우정이었다. 둘의 관계를 보여주는 에피소드 및 사진작품이 꽤 많아 흥미로웠다.그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 공부를 하며 알게 된 프랑스의 사진작가 출신 다큐멘터리스트 레이몽 드파르동의 몇점 안 되는 보도사진이었다.


1942년생인 레이몽 드파르동은국내에서는 사진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영화경력만 30년이 넘는 걸출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그가 1970년대 말 이탈리아 튜린의 한 정신병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실내지만 별다른 조명 없이 작업한 듯한 그 사진 작품들은 황폐한 눈동자의 어린 아이들의 공허한 몸짓이나, 사진에 나오는것을 거부하는 듯 머리를 옷 속으로 깊게 파묻고 있는 한 정신병원 수용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 및 제스쳐, 소리 등을 적극적으로 클로즈업하는 영화작업과는 달리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거나 아예 카메라로부터 얼굴을 감춰버린 사람들을 담았다는 게 흥미로웠다. 델피르와 함께 작업한 작품들위주로 사진이 선정되었기에 아옌데정권의 몰락이나 베트남,캄보디아 등을 돌며 작업한 작품들은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또 하나 눈길을 사진 잡았던 사진들은‘패션 누드’의 개척자헬무트 뉴튼의 작품들이었다.


옷을 걸친 여성들의 사진과, 정확히 같은 인물 같은 포즈와 장소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않은 여성들의 사진을 나란히 병치해놓은 작품이었다. 뉴튼의개인전이 아니기에 작품이 몇 점 없어 아쉬웠지만 전시회에서시각적으로는 가장 강렬한 충격을 준 사진들이었다. 연극과 영화, 서로 다른 관람법을 고민하다 오후 일정으로 가서 보게 된 연극작품은 현재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절찬리에 공연 중인 <민들레 바람되어>였다.한 남자의 지친 일상과 살아남기 위한 투쟁으로 가득한 인생,먼저 떠난 부인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다룬 이 연극은 꽤 재미있는 구성으로 되어 있었다.연극이 시작한 후 어딘가 멍한 표정의 부인이 무대 가운데에앉아있고 남편이 등장한다. 오랜만에 부인을 보러온 듯한 남편의 인사말은 두 사람이 오랜 동안 떨어져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이후에도 주고받듯 자연스레 이뤄지던 대사들이어느 순간 미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한다. 바로 이 두 사람이 서로 대화를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 곧,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소가, 즉 부인이 앉아있던 장소가 어딘가 이 세상 사람같지 않아보였던 부인의 무덤이었다는 점을 알게 된 후 연극은급속도로 흥미로워지기 시작한다.꽤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느 새 주위 사람들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일의 실패, 자식으로 인한 배신감 등으로 힘들어하던 노년의 남편이 부인의 무덤에 와서 우는장면이었다. 객관적으로 슬픈 장면에는 틀림없었지만 웬일인지 나에게는 그다지 슬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아직미혼자라서? 아니면 원래 감정이 메말라서? 그럴 수도 있다는생각이 들었으나 그 보다는 내가 이 연극작품을 굉장히 객관적인 태도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이미 한번 현전했던 것을 카메라에 담아 디지털신호로 변환된 장면만을 최종적으로 보게 되는‘닫힌 구조’의 영화를 볼때와 지금 내 눈앞에서 현전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열린 구조’의 연극은 각기 다른 관람성을 요구한다. 하지만영화 볼 때의 분석적인 태도에 익숙하던 나는 연극을 영화보기의 방식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찌됐건 결론적으로연극은 매우 재미있었고 상쾌했다.이번‘예술기행’은 연극과 사진이 중심이었다. 달리 말하면영화가 제7의 예술로 명명되며‘예술’의 범주에 포함될까 말까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20세기 초반, 이미 예술로서 인정받고 있던 연극과 사진만이 이번‘예술기행’에 포함되었다. 예술기행의 한 프로그램에‘영화’가 포함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어색하다. 영화는‘예술’보다는‘여가’에 가까워진 현재,영화의 위기설이란 의외로 이런 곳에서도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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