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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 | 문화현장 [문화현장]
무대 아닌 무대는 없다
<녹두장군 한양 압송차> 4월 27일~9월 7일 전주부채문화관, <사포 말을 걸다 3> 6월 15일 공간 봄
임주아 기자(2013-07-03 22:35:30)

두 공연은 장르도 장소도 형식도 다르지만 갖춘 무대가 아닌 곳에서 공연하는 것과 관객과 가까이 마주한다는 점이 닮아 있었다. 전주부채문화관 마당에서 열린 ‘얘기보따리’의 <녹두장군 한양 압송차>와 카페 공간 봄에서 열린 ‘현대무용단 사포’의 <사포 말을 걸다3>를 이어보는 일은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녹두, 관객과의 호흡
하늘이 찢어질 듯 더운 날이었다. 배우들의 이마에선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오후 4시인데도 30도를 넘나들었다. 때 아닌 불볕더위에 달아날 것 같았지만 천막 아래 마당 객석엔 100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다. 마당극 <녹두장군 한양 압송차>를 보기 위해서였다. 관군에게 붙잡힌 전봉준이 서울로 압송되는 길에 전주성에 잠시 멈춰선 대목을 그렸다. ‘봉준이 온다!’ ‘내가 화중이요’ ‘대동세상의 꿈’ 등 총 7막으로 구성된 공연은 선무사를 사칭한 손화중, 황해도 애기접주 김구, 남부시장 주모 등이 등장했다. 교동아트센터 골목에서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부채문화관마당. 오른편엔 음향기기와 타악기가, 바닥엔 테이프로 얇은보가 붙어 있다. 최소 음향과 무대, 아담한 마당에 객석까지 합치니 마당은 금세 공연장이다. 엿장수와 뻥튀기 장수가 티격태격 하는 첫 장면에서 벌써 껄껄 웃기 시작한 관객들은 ‘녹두장군 비빔밥뎐’ 대목을 부르는 주모의 소리에 눈을 크게 뜬다.곳곳에서 “얼쑤” 추임새와 “우와”하는 탄성이 나오고 배우들은 관객 반응을 따라 무대를 누볐다. 배우가 객석 뒤에서 튀어나오기도 하고 관객을 우르르 모아 뒷마당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무대에서 함께 춤추기 하는 선을 허무는 공연. “가자!”하며 일본군에게 관객과 함께 공을 던지는 대목은 관객이 끝까지 극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특히 김구가 죽은 전봉준의 머리를 안고 오열하는 장면은 극의 절정. 적절한 순간에 변죽을 울리는 타악 연주자의 연주는 백미다. “관광객들이 단순히 관광지를 보고 가는 것보다는 이곳의 역사나 이야기도 함께 느끼면 좋겠다 생각했다”는 정진권 연출가는 “동시에 두 마리를 잡는 현장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말한다. 역사물이라는 단단함에도 재치와 농담을 빼놓지 않는 공연. 유행어 섞인 대사는 대본의 재미, 즉흥연기는 마당극만의재치다. 하지만 ‘거리마당극’이란 애초 기획과 달리 아직 거리에 나가지 못한 점이 아쉽다. 정진권 연출가는 “거리극으로 이끄려면 지금보다 연희적 요소를 더 보강해야 할 것 같다. 날씨에 좌지우지되는 야외공연인 만큼 앞으로 다가올 초더위에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사포, 자연스러운 몸짓
오프닝 음악이 흐르자 카페 한쪽 구석에서 쟁반을 들고 사뿐사뿐 걸어 나오는 네 명의 무용수. 테이블로 다가가 살며시 물잔을 내려놓자 반응이 제각각이다. 소리 내 웃는 관객도 있고깜짝 놀라 얼굴이 빨개진 관객도 있다. 빈 쟁반을 카운터 탁자위에 내려놓고 테이블과 의자 사이를 가뿐히 지나는 몸짓이 무대 위처럼 자연스럽다. 춤사위에 치맛자락 팔랑이는 그들 뒤로핫팬츠 차림에 운동화 신은 6명의 무용수가 똑같은 춤을 추고있다. 다른 옷 같은 느낌, 다른 느낌 같은 춤이다.첫 순서 ‘안녕하세요(이미지1)’가 지나 사포의 청일점 무용수 강정현씨가 등장했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쏜살같이 튀어나온 그가 카페 안 밖 곳곳을 뛰어다니자 그의 움직임을 따라 관객 눈빛도 그의 움직임을 휙휙 쫓아간다. 저러다 문에 부딪치지 않을까, 테이블 모서리에 박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잠시다.비운의 주인공처럼 내내 숙연한 표정이었지만 날렵한 몸짓의그는 두 번째 순서 ‘누구신가요(이미지2)’를 열정적으로 마무리했다.공간 봄은 판에 박힌 보편적인 카페 모습과는 다르다. 적산가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라 어떤 건물 안에 있다기보다 집 같다는 안락한 느낌이 든다. 꽃과 허브가 가득 심겨져 있는 야외와 완벽하게 카페공간으로 꾸며져 있는 내부는 춤을 추는데 어떤 극적 요소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두 남녀가 실내에 있다가밖으로 뛰쳐나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공간은 어느 가파른 언덕이 되어 주는 것이다. 사포 김자영 대표와 박진경씨의 독무대는 독백처럼 고독한 느낌이 들었다. 공연 제목처럼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듯한 분위기는 테라스를 꽉 채우기에충분했다.지난해 처음 전주 공간봄에서 시작돼 익산 W갤러리에서 열린 공연은 올해는 군산의 레스토랑인 파라디소 페르두또를 추가해 총 3곳이 됐다. ‘사랑’을 테마로 5개의 이미지로 구성된공연은 “관객을 찾아 함께 호흡하고 싶다”는 김화숙 예술감독의 애정이 묻어난다. 가장 낯선 무대에서 가장 익숙한 춤을 보여주는 것. 그렇지만 알고 보면 공연 보는 일도 일상에선 쉽지않다. 특히 카페 춤은 일생에 한번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든다. 서로 다른 것이 부딪쳐 편견을 깨고 또 하나의 문화를만드는 것, 조화를 만드는 첫걸음이다.사포 단원 김용희(24)씨는 “작년에는 관객이 낯설었는데 회를 거듭하니 모든 것을 즐기게 된다”며 “공연의 선입견을 깨는무대라 즐겁다”고 말한다. 공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눈이 즐겁다. 하지만 왜 우리는 공연장에서의 공연만 볼까? 기회가 별로 없는 것도 있지만 이미 객석에 감독처럼 앉아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자세가 굳어져서이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부터 춤이라면 나와 먼 예술이고, 무용수라면 정해져 있는 사람만이 그 길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첼리스트 김홍연씨는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기분이 남다르다”면서 “인간의 몸짓이 이토록 아름다운지 몰랐다”고 말한다.몸이 알리는 감각을 너무 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는 항상 가까이에서 즐기길 원하고, 눈 마주치기 좋아하는 감각을 타고 났을지도. 조봉경(25)씨는 “바로 옆에서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연에 깊이 참여하고 있다는느낌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하나둘일어나 서로의 어깨를 잡고 카페 안을 돌고 돈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가장 낯선 곳에서 삶을 보게 된다.

마당극과 카페춤
두 공연은 무대와 관객 사이의 폭이 좁아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공간이 작품의 요소로 활용되는 것이나, 공간과 작품이 잘 어우러져야 공연이 되는 것 말이다. 백과사전에마당극을 찾으면 “한국 현대연극사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연극양식”이란 뿌리 설명와 함께 “진보적 연극운동의 주도적 양식”는 말이 나온다. ‘마당극’에 마당에 없다면 찾는 이유가 사라지는 것처럼, 거리와 함께 마당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무대다. 그런면에서 나는 <녹두장군 한양 압송차> 공연이 사포의 공연처럼 자유분방해졌으면 하는 바램이있다.카페춤은 거리극과 마당극의 변주다. 실내와 실외를 넘나드는 복합무대는 언제나 시험가능한 공간으로 열려있다. 카페도천차만별이라 얼마든지 낯설거나 익숙해질 수 있다. 사포가 이야기한 낯섦과 익숙함의 공존이다. 무대 아닌 무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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