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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9 | 문화현장 [문화현장]
시원한 공간 뜨거운 현장
| 8월 9일 | 전주 한벽굴
임주아 기자(2013-09-02 17:41:54)

전주천변을 지나 한벽루 길에 다다르자 쿵쿵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한벽굴 앞 조명 아래 비보이들의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휘황한 조명에 펼쳐지는 공연, 2:2 비보이 배틀, 심사위원에 DJ까지 진지한 분위기다. 오늘은 불금, 드레스코드는 레드. 불금에 붉음. 그날 한벽굴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음악과 웅성거림, 매미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한 여름 밤의 한벽굴 풍경. 기차가 멈춘 터널엔 3m에 이르는 거대한 ‘공’이 불을 밝혔다. 형형색색의 영상 빛으로 손색없는 공연장이 된 동굴 안.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비보이 대회와 스케이드보드 대회를 즐긴 관객들이 한벽굴 앞에 모여들었다.
통통 튀는 전자음이 울리자 관객들이 고개를 기웃했다. 이 공간도 음악도 모두 새롭다는 표정이었다. 작고 컴컴한 동굴에 은은히 퍼지는 푸른빛, 자그만 무대 위 노트북과 턴테이블을 번갈아 바라보며 디제잉에 열중인 DJ. 그리고 느릿느릿 몸을 움직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관객들. 어둑한 동굴에 사람을 모으고 조형물을 만들고, 작은 무대를 올리고, 공연자와 관객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게 한 공연. 무엇보다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의 협업이 돋보인 시간이었다. 서울과 군산을 오가며 활동하는 DJ그레이는 “근대 역사를 보여주는 슬프고도 멋진 공간에서 공연할 수 있어 기뻤고 전주 군산 나눌 것 없이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서로를 응원하고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 더 페스타 : 케이브>가 다른 축제와 다른 점은 지자체의 예산이나 후원 없이 참여자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만든 ‘독립성’이다. 특히 ‘동굴’이라는 의외의 공간에서 축제는 사람들의 궁금증과 동시에 ‘한벽굴’이란 공간을 환기시킨다. 일제가 특정 가문을 없애고 강제로 철도를 낸 아픈 역사, 이젠 그 철길마저 사라지고 아스팔트로 덮여버린, 두 번 상처한 이 공간을 놀이의 장소로 탈바꿈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일탈인 것이다. 그리고 숨은 일탈도 있다. 정문성씨는 “전주하면 늘 한옥마을만 떠올리는 사람들, 또 그 속에 묻히는 각자의 문화가 안타까웠다. 만성화 되어 있는 무료 문화 또한 답답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입장료를 내게 하고, 드레스코드를 정하고, 입장시간을 준수하도록 한 이유는 그것에 있다. 모든 팀이 공연료를 받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출연하고 함께 기획한 것은 이 모든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자는 바람”이라 말한다.
관객들은 새로운 장소에서의 축제에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교동 주민 김한철(56)씨는 “아내가 궁금하다고 해서 왔는데 한벽굴에서 이런 광경은 처음 봤다. 신기하고 즐겁다”고 말했다. 조새벽(24)씨는 “전국의 음악 페스티벌은 다 가보았는데 대도시의 굵직굵직하고 획일적인 축제보다 훨씬 재밌고 감동적이었다. 전주에서만 느끼고 들을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공연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실군청 이경진 지역축제담당자는 “일상에서 일탈하도록 만드는 축제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 축제였다. 전주 공연문화에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라 평했다.
이번 <더 페스타: 케이브>는 관과 예술가가 ‘축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정확히 알게 해준 모범사례와 같았다. 이번 축제에서 본 것은 현장에서 노는 사람과 현장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이 첨예하게 다르다는 점과 이 오래된 이야기를 또 한번 느껴야 하는 지루함이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축제가 모두를 당황시켰다는 점이다. 그래서 좋았지만 그래서 더 아쉬웠다. 이 축제는 그들이 오랫동안 갈망해온 ‘그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여름 밤 한벽굴에서 연 축제 이상 이하도 되지 못했다. 그들이 원했던 ‘주최자가 주체가 되는’ 목표달성은 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특히 숱하게 ‘축제 자생력’을 강조했던 전주시의 셀프 언행불일치는 이러한 축제가 끊임없이 탄생해야할 이유를 말해줄 대표사례로 꼽힐 듯하다. 전 국민의 급훈이 ‘창조’가 된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아닐까. 이렇게 두 집단은 서로를 지나치게 경계하거나 안일하게 대처하는 빗나간 사랑을 하고 있다. 슬프게도 저 둘 사이에 낀 ‘시민’은 한번도 제대로 된 ‘관객’이 되어보지 못했다는 심심한 안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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