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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 | 기획 [아이에게 책 읽히는 사회]
책속에서 더 많은 너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읽는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아이들의 책 읽기
김형미(2017-03-15 09:20:24)



<숟가락>은 귀농귀촌한 이들이 만든 공동육아모임이다. 지역에 연고가 없는 이들끼리 자연스레 가족이자 이웃을 만든 셈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자연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몇몇 엄마들끼리 해오던 고민을 현재는 13가족이 넘게 공동육아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2016년에는 완주군 고산면 지역경제순환센터 내에 예쁜 공간까지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여느 공간처럼 시간에 맞춘 프로그램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들과 함께 숲과 들, 모래밭으로 나가 마음껏 자연을 경험할 기회를 누린다. 날이 추워서라든가, 비가 와서라든가 하는 핑계로 공간 안에만 갇혀 지내는 건 <숟가락>과 어울리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통해 책을 읽히고, 뒷산이나 동네에 '나들이'를 나가 절기 따라 철마다 변하는 것을 보는 것.  그러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의식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깨달아 자립심을 키워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숟가락> 대표 이영미 씨는 말한다.

선생님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많이 사랑하는 '하늘아이'라 부르는 선생님 한 분이 있을 뿐이며, 대부분은 엄마들끼리 돌아가며 운영해나가고 있다. 오후에는 동네 분들이 오셔서 미술놀이, 실놀이, 계절에 맞는 다양한 체험놀이를 해주고 간다. 그래도 이 곳 아이들은 누구나 책도 참 잘 읽는다. 책 읽는 것도 하나의 놀이라고 생각한다. 목적을 가지고 책을 대하지 않으므로, 책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슬 한 방울 속에서 세상을 본단다. 어른에 비해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 세상이 만들어놓은 법이라는 '틀'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겠지. 번역된 말의 틀 안에만 갇혀 있다 보면 틀 밖을 보지 못한다는 건 너도 잘 알 거야. 우리는 자신 안에 무궁무진한 우주와 자연을 넣어두었지만, 스스로 이론이란 틀 안에 갇혀 밖을 못 보는 경우도 많다는 걸 말이야.

세인아, 이제 정말 봄이 오려나보다. 매창공원 매화나무 가지에 너의 순한 눈망울 같은 꽃봉우리가 가득 올라와 있더구나. 봄꽃은 규정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소리를 갖고 있는 아이의 마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흙과 멀어져서 사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주를 보고 있기는 하지만 우주 안의 알맹이는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도 많아지고 있다는 것 또한 함께 느끼는 중이란다.

그래, 너는 흙을 가지고 노는 아이였지. 붉은 흙을 뒤집어쓰고 노는, 몸도 마음도 흙이 되어버린 아이. 완주 공동육아모임인 <숟가락> 속에서 살고 있는 아이.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직도 책에 얽매여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도 많더구나. 도서목록에 나와 있는 책들을 줄줄이 사탕처럼 목에 걸고 다니면서 책 안에 갇혀 사는 아이들이지.

나는 생각한단다. 봄 되면 꽃망울이 맺히고 푸른 잎새를 내밀 듯, 사람에게도 때가 있다는 것을. 각자 조금씩은 다른 시기를 갖고 있기는 하겠지만, 그 때 그 나이, 그 때 그 시간에 겪어야할 것들이 있지. 그리고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고. 그것들을 하지 못하고 지나치면 커다란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아, 돌아서 다시 돌아와 그것들과 정면으로 대면해야만 하지. 그러나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워야 해. 그래야 불편함이 없어지거든.

요즘엔 많은 엄마들이 그러한 이치를 알아 참 현명하더구나. 예전처럼 지나치게 사교육을 강요하지도 않고, 읽기 싫은 필독서를 권하지도 않더라구. 내가 살고 있는 부안지역 엄마들도 그러한데, 그저 자연스레 조성된 환경의 흐름에 맡긴다고 해야 할까? 인간의 삶에, 인간의 삶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주위 환경에 순응하려는 거야.

순응하면서 아이가 스스로 책을 필요로 할 때까지 기다려주기도 하더구나. 아이든 어른이든 사람에게는 누구나 나와 맞는 운명적인 책이 있고, 그것을 읽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아는 거지. 그렇게 아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다만 주변 환경을 조성시켜주는 데 뜻을 두는 거야. 필독서 목록은 사실 아이보다 엄마들에게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좋은 기억을 줄 수 있는 환경을 아이에게 만들어주고 나서 하나씩 내밀어줄 수 있게끔.

학원을 무조건 많이 가는 게 좋은 건 아닌 것처럼, 책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란다. 책도 하나의 환경이 될 수 있지. 그 속에서 만나지는 사람이 있고, 꽃과 나비와 나무가 있으며, 사건과 일이 있고, 계절이 있기 때문이란다. 어떤 사람과 사건과 계절을 만나게 해줄지는 어른들이 도와줄 수 있겠지만, 그것들을 선택하는 것 역시 아이들의 몫으로 두어야겠지. 스스로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과정으로써의 책을 지닐 수 있도록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세인아, 책은 읽는 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단다. <숟가락>에서 만난 엄마들은 그것 또한 알고 있었어. 읽히는 게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말이야. 세인이 너와 같은 수많은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게, 좋은 추억을 많이 간직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책을 권하는 엄마들이었어. 참 보기 좋지 않니? 결국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지. 사고의 영역을 넓혀 저 매화 꽃망울을 바라보는 눈을 좀더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거란다. 그것으로 툭툭 걸리는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삶을 자기 의지대로 보다 자유롭게 살아나가길 바라는 거야.

<숟가락> 대표 이영미 씨 또한 그렇게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는 사람이었단다. 큰 산 안에 있으면서 작은 것을 보려고 하는 마음. 바로 그 마음을 아이들에게 선물해주려는 거야. 그 과정 속에서 나로서 가질 수 있는 진정한 존재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어. 신기하게도 그런 선물을 받은 아이들일수록 흙에서 놀 때처럼 책과도 잘 어울리더구나.

어른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모든 불안과 공포, 냉대와 불안함 속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단다. 생명과 죽음이 하나라는 걸 알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또 생각했단다. 즉 흙에서 시작하고 끝난다는 위대한 우주의 이치를 자연스레 알게 된 거지. 그렇게 그 아이들은 자유로워진 거야. 우리를 결속하고 속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삶속에는 늘 최고의 안전장치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터득할 수 있게 된 거지. 그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기에, 산 속에 있든 도시 한복판에 떨구어지든 두려움 없이 살아갈 힘이 생기는 거지. 모든 일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가기 때문일 거야. 책은 아이들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그렇게 살 수 있게 알아가도록 도와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준 거야.

세인아,'친구'라는 말 참 좋지 않니? 꼭 무엇을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저 곁에 있으면 좋은 친구 말이야. 함께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고, 봄이 오는 길을 걸으며 미래를 나누어도 좋을. 그림자처럼 발밑에 있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내가 가는 모든 길을 함께 걸어가 줄, 그런 친구. 책은 너에게도 그런 친구가 되어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단다. 책속에서 더 많은 너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또한 책이라는 친구를 통해 긍정적으로 생각이 바뀌고, 말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고, 빛나는 삶이 되길 나는 바란단다. 그렇게'변화'할 수 있기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나 실패의 그늘에서도 쉽게 벗어날 수 있거든. 큰 슬픔을 만나도 이겨내는 힘 말이야.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책속에서 보다 많은 친구와 환경을 만나볼 필요가 있을 거야. 물론 그 속에서 만난 친구나 환경을 온전히 내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인내심도 길러야 한단다. 곁에서 겉돌지 말고 좋은 친구를 내 곁에 최대한 가까이 두라는 얘기야.

그러나 많은 친구를 건성으로 대충 만나는 것이 아닌, 하나를 만나더라도 깊이 있게 사귀길 바란단다. 그러면 너의 미래는 보다 지혜롭고 재치가 있으며, 사고력과 이해력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게 될 거야. 나는 네가 그러한 '변화를 위한 독서'를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단다. 멈춰서 고여 있지 않고, 흘러서 바다가 되는 강물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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