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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 | 기획 [한복의 일상화를 꿈꾸다]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편안한 우리 옷
김순영(2017-05-19 14:26:11)



한복의 아름다움과 멋을 이야기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서 먼저 한복 자체의 우수한 조형성을 말하고 싶다. 한복은 고도의 세련미와 조화미를 지닌 옷이다. 20세기 초 한국을 방문했던 독일인 선교사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는 한국인 민중의 신발인 짚신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아무것도 보태거나 뺄 것이 없다"고 했다. 조형적으로 완벽한 디자인은 더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필자는 한복을 보면 볼수록 참으로 "더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선과 형, 색채, 소재와 문양 등의 조형 요소들이 절대로 과하지 않으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데, 그래서인지 한복은 시간이 지날수록, 보면 볼수록 더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옷이다. 한복의 아름다움과 멋은 일차적으로 한복 자체가 지닌 우수한 조형성과 관련이 있다.
한복은 상의와 하의가 분리된 옷으로서 대등하지 않은 상하의 길이가 주는 비례의 멋이 있다. 여자의 짧은 저고리와 긴 치마, 남자의 긴 포와 그 아래에 조금 드러나는 바지 자락에서 세련된 비례미가 느껴진다. 또한 직선적인 깃과 흰 동정이 자아내는 상의의 정적 긴장감은 긴 고름이나 풍성한 치마 자락, 여유로운 바지폭의 자연스러운 흔들림이 만들어내는 경쾌한 율동감과 만나 긴장감이 누그러지며 정적인 미와 동적인 미의 조화를 이룬다. 한복에는 대칭보다 비대칭 구조가 많다. 좌우 길의 비대칭, 외고름의 비대칭, 남자 바지 좌우 사폭의 비대칭, 여자 치마 뒷자락 여밈의 비대칭 등이 대표적이다. 대칭 구조가 경직성과 긴장감을 자아내는데 비해, 비대칭 구조는 은근한 세련미를 자아낸다.
한복에는 한국의 자연을 닮은 색이 많이 이용된다. 백색, 옥색과 같은 순수하고 깨끗한 담색을 비롯하여 연두색, 분홍색, 홍색, 남색 등의 맑은 유채색이 주로 이용된다. 담색과 유채색은 때로는 주색과 강조색의 관계로서, 때로는 상하 배색의 대등한 관계로서 서로 만나 조화로운 색채 대비의 미를 이룬다. 여자의 삼회장저고리, 남자의 옥색도포와 홍색술띠, 신부의 녹의홍상 등이 모두 그 예이다.
한복의 소재는 참으로 단아함의 미를 지녔다. 표면에 화려한 문양이 드러나지 않아 언뜻 보면 소박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모시나 명주에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을 한 이후에 생기는 우아한 광택과 마치 가야금 줄이 튕기는 것처럼 한들거리는 재질의 기품은 절대 소박함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치스럽다고 할 만큼 세련된 단아함이 느껴진다. 한복에는 대담하거나 화려한 문양이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금박이나 자수와 같은 화려한 장식은 특별한 의례복에서 주로 이용된 것이었고, 일상의 한복에서는 담색과 맑은 유채색의 세련된 조화를 통해 단아함의 미를 추구했다. 왕실 복식에 장식으로 주로 이용된 금박 문양도 절대로 과하게 사용되거나 스팽글처럼 튀면서 반짝이지 않는다. 화려한 의례복에서조차 절제와 품격, 세련된 단아함을 잃지 않은 것이다. 

한복의 아름다움과 멋은 또한 한복 구조와 착장의 특징에서 비롯되는 부분이 있다. 한복은 인간, 그리고 자연과 소통하는 옷이다. 기본적으로 한복은 열린 구조다. 열린 구조인데, 중요한 것은 그 형태가 고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움직임과 자연인 바람에 의해서 옷이 열리면서 그 형태가 가변적으로 된다는 점이 바로 한복의 아름다움이자 멋이다.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가 파리 패션쇼 무대에서 한복을 소개했을 때 당시 기자들이 이영희 디자이너의 한복을 '바람의 옷'이라 했다고 한다. 바람의 옷, 참으로 잘 지어진 이름이라 생각한다.
저고리와 치마, 포에는 모두 트임이 있다. 저고리와 포는 기본적으로 앞트임으로 여며 입는다. 포 종류 중에서는 뒷자락과 옆선에 트임이 있는 것들도 많다. 여자의 치마는 풀치마가 기본이며 등 뒤쪽에서 자락을 포개어 여며 입는다. 트임이 있는 다른 나라의 전통 의상들도 많지만, 한복에서 유달리 트임이 눈에 띌 때는 옷의 길이가 긴 경우이며 특히 착용자의 움직임이나 바람에 의해 옷자락이 날리는 순간이다. 착용자의 움직임과 바람에 의해 풍성한 한복 치마의 뒷자락이 날릴 때, 또는 기다란 포의 자락이 열리면서 속에 입은 옷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때, 한복은 열린 구조로서 속에 입은 옷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착용자와 외부 자연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렇게 옷이 열릴 때 어떤 정해진 규칙은 없다. 열림 그 자체로 한복은 무척 매력적이다.
옷이 열리면 아무래도 안에 입은 옷이나 착용자의 자세가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한복은 가장 겉에 입는 옷 못지않게 밭침옷과 속옷도 중요하고 착용자의 자세도 무척 중요한 옷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뿐만 아니라 내부의 형식이나 내면의 마음가짐도 중요한 것이다. 의관을 정제한다는 말이 있듯이 예로부터 우리는 옷을 제대로 갖추어 입는 것을 중시했다. 의관 정제라는 말에는 외양의 옷 매무새 뿐만 아니라 내부의 형식과 내면의 마음가짐까지 바르게 함을 강조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열린 구조를 통해 한복은 인간과 자연의 소통 매개체가 되고 착용자의 마음과 자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옷이 된다. 그것이 바로 다른 나라의 전통 의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이자 멋이다.

한복의 또 다른 아름다움과 멋은 한복이 기능성을 품고 있는 옷이라는 점이다. 한복이 기능성을 품은 옷이라는 말은 한복을 다소 불편한 옷이라 여기고 있고 현대 패션의 편안함에만 익숙한 우리들에게 선뜻 와 닿지 않는 말일지도 모른다. 현대 패션을 편안하게 여기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헐렁한 티셔츠나 스포츠 웨어처럼 옷 자체가 기능적인 경우도 있지만, 실상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현대 패션에의 접근 용이성과 글로벌 패션 트렌드 때문에 현대 패션을 입는 것을 더 편안하다고 '느끼는' 측면이다. 옷 자체의 형식만 본다면, 꼭 끼는 청바지나 슬림 핏의 정장 수트, 굽 높은 하이힐이 그렇게 편안한 아이템은 절대로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현대 생활과 트렌드에 맞는 패션 아이템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입는 것이다. 반면 한복을 입으려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나 복식의 형식을 기준으로 볼 때, 한복이 가진 기능성은 현대 패션에 결코 뒤지지 않으며 한복의 멋으로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10여 년 전 필자가 유학생활을 할 때 당시 아시아 문화연구로 저명하신 미국인 교수님께 한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여쭈어 본 적이 있다. 당시 그 교수님은 한복과 기모노와 양복을 비교하면서 한복은 무척 편안하고 생동감 있는 옷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하셨다. 이유인즉, 한복은 상의와 하의가 분리되어 있고, 특히 하의인 치마나 바지에 여유가 많아서 풀썩풀썩 마음대로 앉아도 되고 몸을 구속하지 않아서 편안해 보인다는 것이다. 기모노나 서구 옷은 절대로 인체의 움직임을 그렇게 자유롭게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복을 입은 한국 사람은 기모노를 입은 일본 사람이나 양복을 입은 서양 사람보다 왠지 발랄하고 생기 있고 활기차 보인다고도 했다. 외국인 학자의 분석이었지만 꽤 정확한 지점을 말한다고 느끼면서 나도 많이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우리에게 익숙한 사극 드라마 속의 한복이나 결혼식 예복으로 입는 한복에서 기능성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한복 치마의 길이는 땅에 길게 끌리고 있고, 한복 소재는 금박과 은박이 지나치게 화려하여 세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사실 원래 평상복 한복 치마의 길이는 땅에 끌리는 길이가 아니다. 땅에 끌릴 정도로 길게 입는 것은 의례복이나 무용복 등과 같이 특별한 옷의 경우였다. 평상복 치마는 발등을 살짝 덮는 정도의 길이가 대부분이었으며, 이마저도 일을 할 때는 허리띠를 둘러 치맛자락을 약간 올려 입어서 활동에 방해되지 않게 했다.
기본적으로 한복은 인체에 밀착되는 옷이 아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품이 지나치게 왜소하고 길이가 짧은 여자 저고리가 유행했던 적이 있으나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한복의 품은 넉넉하고 여유로운 편이었다. 여유 있는 한복의 품은 인체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체형의 결점을 가려줌으로써 심리적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한복은 옷 그 자체의 형식으로 볼 때 신체적 기능성과 심리적 기능성을 모두 품은 옷이라 생각한다. 다만 현대의 의생활 시스템과 글로벌 패션 트렌드에 함께 자리하지 못하기에 우리가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기 어려울 따름이다. 한복이 품은 기능성을 현대의 의생활에서 어떻게 풀어낼 지는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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