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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 | 기획 [여름, 여행이 좋다]
왕의 공간에서 역사를 만나다 - 서울
역사를 만나는 여행 ①
(2018-07-13 14:15:04)



왕들의 공간인 궁궐에서 조선왕조부터 대한제국 까지 흔적을 찾아 역사를 되짚어보는 여정을 시작해 보자.
서울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5개의 궁궐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행궁 등이 남아 있다.
고즈넉한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서울의 궁궐에서 하루하루 역사를 만들어 나갔던 그 시간들에게 말을 걸어보자.


경복궁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이다. 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세종로)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서울) 도시 계획의 중심이기도 하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가 세워지고 3년이 지난 후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했다. 완공된 지 며칠 후에 개국공신 정도전은 태조의 명에 따라 경복궁이라는 궁궐 이름을 비롯해 강녕전, 연생전, 경성전, 사정전, 근정전 등 주요 전각의 이름 지었다.
광화문 - 흥례문 - 근정문 - 근정전 - 사정전 - 강녕전 - 교태전을 잇는 중심 부분은 궁궐의 핵심 공간.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대칭적으로 건축 되었다.


Tip. 경복궁은 건물자체로도 훌륭한 볼거리지만 500년 동안 첩첩이 쌓인 역사와 간직한 이야기들을 수 있게 해설사와 동행하길 권한다. 경복궁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정규해설은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진행한다.


창덕궁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공식 궁궐인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궁궐이다. 창덕궁은 이궁으로 지어졌다. 이궁은 나라에 전쟁이나 큰 재난이 일어나 공식 궁궐을 사용하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지은 궁궐이다.
조선의 왕들 중에는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더 좋아한 왕이 많았다. 많은 왕들이 머물며 나라를 다스리면서 창덕궁은 자연스럽게 조선 왕조의 중심지가 되었다.


창경궁
창경궁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으로, 1418년 왕위에 오른 세종이 생존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이다. 창경궁의 역사는 성종 13년(1482) 창덕궁의 수리를 논하는 자리에서 대비전의 세 어른인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폐허처럼 남아 있던 수강궁 수리를 명하면서 시작된다. 보완공사를 거쳐 궁궐다운 규모를 갖추게 된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기능을 일정 부분 보완하는 궁궐로 자리잡게 됐다.


덕수궁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은 원래 성종(9대)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1593년(선조 26)부터 선조의 임시거처로 사용되다가 광해군이 1611년(광해 3)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던 이곳에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를 붙여 주었다. 그 후 광해군이 1615년(광해 7)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고 경운궁은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경희궁
경희궁은 숙종과 경종이 태어난 곳이며 숙종·영조·순조·인헌왕후·인선왕후·인경왕후·선의왕후1가 승하했으며 경종·정조·헌종이 즉위한 곳이다. 조선 후기 정치사의 중심무대로 지금 서울에 남아 있는 어느 궁궐에도 뒤지지 않는 비중과 중요성을 간직한 궁궐이었다. 그러나 어느 사이 궁궐이 아닌 제례 공간 종묘에 그 자리를 넘겨주고 잊혀진 궁궐이 되어버렸다.


TIP. 한국 고가구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한국가구박물관>
'한국가구박물관'은 한국의 전통 목가구를 중심으로 전통 살림살이를 전시하는 전문 박물관이다. 소장품을 종류별, 재료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곳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할리우드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 가수 빅토리아 베컴이 감탄을 자아낸 곳이다. 철저한 사전 예약제로 방문이 쉽지 않은 곳이니 사전예약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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