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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 | 기획 [청년이 말하다]
깊어진 고민, 지역이 답할 차례다
집담회
(2018-11-16 12:41:33)

청년 문제는 거주 지역, 종사하는 분야, 소득 수준에 따라 그 형태가 천차만별이지만 정부에서 시행하는 청년 정책의 대부분은 고용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청년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다층적인 삶에 대한 이해 없이 문제의 논지를 일자리로만 축소시키는 것은 설사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시대 청년들을 단순히 맞춤형 노동력, 예비 근로자로만 여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지역의 경우 그런 경향은 더욱 심해 '청년 문제=청년 실업'으로 다뤄지기 일쑤다.
물론 천정부지 치솟고 있는 실업률과 청년들의 지역 이탈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요즘 지역의 일자리 문제는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역 청년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일자리 부족에만 있다고 보는 시각은 낡았다.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도 많지만, 지역에 남아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 청년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역에 남은 이유, 바로 거기에 지역 청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담겨 있지는 않을까? 실마리란 말이 거창하다면 사소한 문제 제기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문화저널이 이번 기획, '청년이 말하다'를 준비한 이유다.
지난 10월 17일, 전주 한옥마을 '공간 봄'에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청년 여섯 명이 모였다. 극단 두루의 대표를 맡고 있는 극작가 김소라, 마을N복지연구소 누비다 대표와 두월노을마을 사무장을 맡고 있는 김석 대표, 전북환경운동연합 문지현 활동가, 전북대 대학로에서 독립서점 에이커북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는 박지훈 대표, 전주 남부시장 재생사업팀의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다 지금은 독립서점을 준비하고 있는 강평화 씨, 독립영화 <목욕탕 가는 길>을 연출한 이상혁 감독이 모인 그날 자리에서 지역에 대한 그들의 고충과 바람을 들었다. 분야는 달라도 지역이 안고 있는 비슷한 문제 속에서 그들의 공감대가 더욱 굳건해짐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서울공화국, 지방식민지

첫 번째 질문은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가 무엇인가'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숫하게 받아 왔던 질문이어서 다시 답변하기 지친 까닭일까. 잠시 침묵 끝에 이상혁 감독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집담회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상혁: 물론 다른 작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영화 쪽은 혼자서 하는 작업보다 다수가 모여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작업을 하려면 인프라 구축이 잘 돼 있어야 하는데, 지역은 인프라 규모가 너무 작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울 쪽으로 몰리는 상황이에요. 당장 전주에서 스태프를 구하려고 해도 연출하는 사람은 많지만, 다른 파트 스태프는 구하기가 힘들어요. 음향이나 조명, 카메라 등 숨어 있는 스태프가 많은데, 그런 스태프들을 전주에서는 모으기가 힘들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전부 서울에서 데려와야 하는데, 그럼 또 제작비가 늘어나겠죠? 그런데 자신이 서울로 올라가면 제작비 문제가 다 해결돼요. 그렇게 청년들이 서울로 향하면 지역 인프라는 더욱 협소해지고...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상황이 이러니 지역 인프라의 자정 작용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역을 빠져나가는 청년들을 붙잡을 만한 매력적인 카드가 이쪽에는 한 장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인프라 문제는 비단 스태프뿐만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해당되는 문제다. 10년간 극단을 운영하며 숫한 배우들을 키워 온 김소라 작가도 비슷한 경험이 많다며 말을 보탰다.)


-김소라: 연출이나 제작자 입장에선 서울의 잘하는 배우들을 쓰고 싶긴 하죠. 저는 그래도 10년 동안 지역에서 잘 가르쳐서 써 볼까 했는데, 가르쳐서 애들이 잘 한다 싶으면 서울로 가버려요. 그래도 제가 잡을 수가 없어요. 그만큼 돈을 못 주니까.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지역에서 인프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돈이에요. 제가 재원 조달을 충분하게 해 주면 얘는 서울 안 가고 전주에서 작업할 수 있어요. 그런데 돈도 안 주고, 또 여기서 작업하면 유명해질 수나 있나요? 책임져 줄 수도 없고... 그러니 서울 간다고 하면 잘 가라고 축복해 주면서 보내 줄 수밖에 없어요. 그런 경험을 숱하게 하다 보니까 거기에 대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이제는 그냥 인정하려고요.


(결국 돈이라는 김 작가의 말이 씁쓸하지만 그럼에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말이 경험에서 우러난 진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런 문제들은 청년들이 아무리 뭉친다 해도 구조나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건드리거나 바꿀 수 없는 부분이기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강평화: 서울에서 1년 동안 지내며 느낀 것은 이제 서울은 다른 국가라는 거예요. 이제 지역에서만 활동해서는 경쟁력이 없다고 봐요. 지역에서 활동은 하지만 지역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다른 지역은 또 어떻게 하는지 보는, 그런 관찰과 해석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줄곧 침묵을 지키던 강평화 씨의 한 마디가 날카롭게 핵심을 찌른다. 홀로 돌출되어 끊임없이 성장을 반복해 온 서울은 이제 대한민국 속 또 다른 대한민국이 됐다. 수도민국이란 말을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까닭이다. 서울공화국과 지방식민지, 두 개의 나라로 나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문화·예술 일을 하려면 서울에 발 한쪽이라도 걸치고 있어야 한다는 게 강 씨의 설명이다.)


오히려 지역이어서 좋았다?

서울과 지방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인 가운데, 오히려 지역이어서 좋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전북환경단체연합에서 4년간 일한 문지현 활동가다.


-문지현: 전북뿐 아니라 타 지역에 가서도 활동하고 그랬는데, 환경운동이란 관점에서 서울과 지역의 차이를 보면 서울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경험치가 낮아요. 그리고 상당히 집중적이에요. 예를 들어 에너지 분야라면 정말 에너지만 해요. 근데 여기서 저는 다 해야 돼요. 그렇게 이것저것 다 하다 보니까 저한테는 지역 일이 더 재밌는 거예요. 배우는 것도 많고. 그래서 지역에 있는 게 자산이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서울에 있는 활동가들은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잖아요. 그런데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 그 감정을 느끼지 않고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많은 경험을 쌓은 뒤 서울에 가서 활동하는 건 의미가 있지만, 그냥 서울에서의 활동은 어떻게 보면 재미 없는 활동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로서 꿈을 키우기에는 지역이 더 낫다고 봐요. 서울에서는 20~30년 활동한 선배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거기서 내가 뭔가를 바꾸려고 해도 바뀌는 게 아닐 텐데... 차라리 지역에서 해 볼 수 있는 경험 다 해 보고, 이 경험들을 가지고 나중에 뭔가를 하자.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지역에서 다양한 업무를 접하며 경험을 쌓은 뒤 서울에 올라가서 활동하면 더욱 재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게 문 활동가의 생각이다. 특히, 데스크 업무가 주를 이루는 서울에선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기와 사람들의 감정을 접하기 어려워 활동가로서의 도덕관이나 가치관을 세우기에는 지역이 오히려 낫다는 평이다. 강 씨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강평화: 그 부분은 저도 공감해요. 지역에서는 모든 경험들을 다 해 볼 수가 있어요. 전주 남부시장에 있을 때 문화기획자가 하는 일이라고 하면 페이퍼 업무가 주를 이룰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전혀 아니었어요. 수도 고장나면 수도도 고쳐 줘야 하고, 전기 안 되면 전기도 손 봐줘야 하고, 그리고 금, 토요일에는 야시장이 열려요. 그때 취객이 오면 취객 상대도 해야 하고. 기획은 기획대로 하면서 어떨 때는 잡부가 됐다가 또 어떨 때는 경찰관이 됐다가, 그런 식으로 전반적인 스킬들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식의 업무 경험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는지는 다시 한 번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참석자들은 다양한 실무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역량이 성장한 것은 분명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의 열악한 인프라가 그런 기형적인 업무 구조를 만들어 낸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소라: 물론 두 분 이야기에 저도 공감은 해요. 여기서는 기획이며 운영이며 다 해야 하는데, 서울은 분업화가 굉장히 잘 돼 있거든요. 그게 좋게 말하면 분업화인데, 저는 처음에 되게 답답했어요. 이 쉬운 걸 왜 돈까지 줘 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그런 부분이 좀 황당했어요. 황당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지역에 그런 인프라가 많지 않으니까 그냥 우리가 했던 거예요. 열악한 상황에서도 기준에 맞춰야 하니까 했던 거지, 이게 지역의 좋은 점이다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부분이라서 그냥 서울과 지방의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야 될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다른 길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중앙이니 지역이니 이분법적으로 나누면 절대 좋은 방향성이 나올 수 없다고 봐요.


(그래서 김 작가는 서울과 지역으로 나뉘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가 이제 시대에 뒤쳐졌다고 말한다. 서울과 지방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다른 길을 모색해 보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다름은 인정하더라도 서울과 지역 사이엔 어떻게 해도 쫓을 수 없는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김석 대표의 말처럼 그것은 물리적인 거리기도 하고,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의식 차이기도 하다.


-김석: 우리 지역이 어쩔 수 없이 쫓아가지 못하는 차이는 분명히 있어요. 서울에서 떨어진 거리만큼의 차이가 분명히 발생해요. 예전에 서울에서 버스 타고 전주까지 두 시간 반 걸렸잖아요. 그러니까 서울과 전주는 최소 2년 반의 차이가 있다고 얘기해요. 그런데 요즘은 좀 당겨지고 있죠. KTX가 생겼고, SNS나 인터넷도 발달했고.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그런 것들이 더 빨리 확산되고 있는 부분들은 있는데, 그래도 차이는 존재한다고 봐요.


(그런 상황에서 지역 청년들은 어떤 방법을 취할 수 있을까? 김 작가는 부딪힐 거라면 차라리 빨리 가서 부딪혀 보라고 조언한다.)


-김소라: 지역에서 10년 정도 활동을 하다가 서울팀하고 만나서 같이 한 게 한 3년 정도 됐어요. 제작하고 기획을 하는 걸로 서울을 가 보니까 작품 완성도가 굉장히 높더라고요. 그래서 저곳에 내가 들어갈 틈이 있을까, 되게 두려웠거든요. 특히, 뮤지컬이나 연극 쪽은 더 그러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가서 해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작에 갈 걸, 지역과 서울이라는 프레임에 갖혀서 왜 더 일찍 갈 생각을 못 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더 일찍 가서 좋은 것은 빨리 배워서 오고 그럴 걸. 왜 지역에만 묶여가지고 이러고 있었을까. 이번에 해 보니까 오히려 자신감을 얻어서 전 청년들한테 두려워하지 말고 갈 거면 빨리 가서 부딪혀 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그리고 지원금 받기는 지방이 서울보다 훨씬 쉬우니까 그런 지원금을 기반으로 서울 왔다 갔다 하면서 좋은 점을 배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방향은 다르지만, 박지훈 대표도 전주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며 지역을 위한 독립출판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며 책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차라리 전주 내에서 작가를 발굴해 내면 어떨까란 생각을 가지고 이번 독립출판 교육을 계획하게 됐다고 한다.)


-박지훈: 이번에 저희 쪽에서 준비하고 있는 게 출판 교육을 아예 우리가 하자는 거거든요. 대형출판사 같은 경우는 작가와 접촉해서 직접 섭외를 한다든지 돈을 얼만큼 주고 책을 출판한다든지 하는 식인데, 저희 같은 경우는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모았던 글들을 가지고 개인이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책 만드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 인식을 깨고자 전주에서도 해보려고 해요. 이미 광주 쪽 서점은 그런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고. 사람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저희는 전주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치를 찾고, 작가 양성이라든지 자체적으로 작은 행사라도 일단 활성화할 수 있는 것을 활용하려고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청년들의 다양한 삶처럼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지역을 위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 그런 고민과 시도가 당장 결실을 맺긴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포기하지 않는 이상 값진 열매를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청년을 위한 정책인데, 정작 청년은 주체가 아니다

지역을 위한 청년들의 고민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 지역 청년 정책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을까? 청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긴 했으나 현재로선 돈을 앞세운 시스템 안에 청년들이 동원되는 느낌이라며 김 대표가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김석: 정책적으로 청년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걸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시스템들이 만들어지고 어떻게 보면 그 시스템에 청년들이 동원되는 느낌도 있거든요. 물론 자체적으로 하는 인프라도 많이 있지만.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뭉쳐서 뭔가를 해보자, 이렇게 시작된 게 아니라 정책적으로 청년위원회가 필요하대, 청년들이 지금 어렵다고 자꾸 얘기를 하니까 뭔가 정책적인 시도를 해야 돼, 우리도 만들어야 돼, 이러고 사람을 모으는 거거든요.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그 안에서 네트워크도 형성하고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갔는데, 계속 사업 중심으로만 가는 거예요. 행정에서 요구하는 것만 하면서.


(청년 인프라 구축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그 과정이 지나치게 행정, 사업 중심으로 치우쳐져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때문에 청년 스스로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심지어는 예산만을 노리고 팀을 꾸리는 일명 꾼들도 곳곳에서 성행하게 됐다고 한다.)


-김석: 청년들이 먼저 앞장을 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관의 요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예산이 끊기면 기껏 만들어진 인프라도 와해되고...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가치 지향적으로 뭉쳤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문 활동가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 역시 김 대표와 마찬가지로 청년 관련 행사를 들여다볼 때마다 참여하는 면면들이 똑같아서 보여 주기식 행사에 청년들이 동원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문지현: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참여하는 청년들도 분명 있어요. 하지만 계속 관의 간섭을 받다 보니 그런 생각이 잘 발현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관 역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단발성 행사로만 진행하니까 지역에 어떤 소스가 있는지 못 보고, 또 못 보여 줘요. 어떻게 하면 지역에 있는 자산들을 보여 줄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전주에 남겠다는 자부심


-김소라: 서울에 집이 있는데, 그래도 서울에 가지 않고 전주에 있을 건가? 만약에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그럼에도 전주에 있겠다고 할 청년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많은 논의들이 오고가는 중에 김 작가가 아주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그의 말처럼 지역 청년들이 서울에 가지 않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단지 집이 이곳에 있기 때문일까? 김 작가는 그럼에도 자신을 전주에 남을 거라며 전주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가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소라: 저는 그 소리의 DNA랄까? 전주에서 태어난 자부심이 있어요. 서울에서도 판소리를 배우러 전주로 오거든요. 한예종 배우들이 전주에 와요. 그래서 창극 콘텐츠나 전주 소재를 가지고 서울의 세련된 무대와 어떻게 콜라보를 시킬지 여기에 집중하고 있어요.


(주민등록만 그 지역에 두고 있다고 그 지역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 대표는 거주지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자신의 지역 정체성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석: 하지만 아직도 지역이나 주민등록 같은 것들로 끼리끼리 묶으려고 하는 경향들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전주에서 진행하는 사업에는 반드시 전주 사람만 써야 한다든가 하는 식이죠. 그런 것들에서 탈피하는 게 청년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대로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내면서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는 또 어떻게 협업할 것인가.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청년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김 작가는 최근 서울에서 겪었던 경험담을 풀어놓았다.)


-김소라: 얼마 전에 CJ 아지트 대학로에서 2주 동안 공연을 했어요. 지역 극단으로서는 최초로 공간지원작에 선정된 건데, 그때 정읍 명품 귀리쿠키를 일부러 협찬받았어요. 받아서 관객과의 대화 때 질문한 사람, 추첨한 사람한테 정읍 명품 귀리쿠키를 드리려고 했어요. 근데 정읍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관객들이 빵 터진 거예요. 굉장히 당황스러웠어요. 그리고 선물을 아무도 안 받고 그대로 나가시는 거예요. 그때 느꼈어요. 지역에 대한 거리감이 서울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크구나. 사실 우리는 서울에 대해 거리감이 없잖아요. 우리는 서울 자주 왔다갔다 하니까 거리감이 없는데, 서울 사람들이 지방을 볼 때 오히려 거리감이 굉장히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그 거리감을 어떻게 좁혀 주냐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봤으면 해요. 이 자리에선 자꾸 우리가 쫓아가야 한다고, 거꾸로 생각을 했잖아요. 우리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나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에 귀리쿠키를 준비했던 건데...


(우리가 쫓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김 작가는 청년들이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활동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나를 알리며 시작되는 청년 인프라

이날 집담회에선 청년 인프라 구축을 위한 아이디어도 함께 논의됐다. 강 씨는 지난해 미국 여행에서 알게 된 링크드인(SNS의 한 종류, 구인구직, 동종 업계 사람의 정보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예로 들며 청년들끼리의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는 통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평화: 작년에 미국을 갔는데, 어떤 앱을 보고 정말 한 대 맞은 느낌을 받았어요. '링크드인'이라는 앱인데 들어 보셨어요? 그게 어떤 거냐면, 내가 할 수 있는 재능과 관심 분야를 태그해요. 그래서 아침마다 몇 명한테 그걸 보내요. 그럼 그걸 받은 사람이 어! 그럼 우리 만날까? 해서 만나는 거예요. 많이 만나는 사람은 아침 7시부터 만나서 3명하고 미팅을 하고 출근을 해요. 저한테는 이게 진짜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라이트한 만남들이 없는 느낌이거든요. 그리고 자기를 보여 줄 수 있는 지표가 인스타그램밖에 없는 거예요. 내가 뭘 먹었는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작업 경력을 계속 올리면서 내가 뭐하는 사람이야, 나는 지금 뭐하고 있어, 그렇게 계속 링크를 걸어 놓는 게 진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서로를 알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각자의 필요에 따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된다면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아질 거라는 게 강 씨의 생각이다.)


-강평화: 그래서 저도 서울 올라갔을 때 다른 의미로 링크드인을 해 봤어요. 인스타그램으로 다이렉트를 걸고 나 이런 거 준비하고 있는데 만났으면 좋겠어, 라고 다이렉트를 쫙 보내요.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프로젝트도 하고 전시도 하고 도록 작업도 같이하고,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전주에는 그런 인프라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인프라를 구축할 때 또 한 가지 고민할 부분이 바로 행정이다. 김 대표는 행정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인프라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며 먼저 청년들의 생각과 욕구를 관에 전달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석: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40대거나 그보다 위인 경우가 많아요. 그분들은 평화 씨가 얘기하는 거 알아듣지를 못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정책으로 풀어내고, 또 어떻게 청년들의 욕구에 맞춰서 인프라를 만드냐고요. 그 지점부터가 인프라를 만들 때 생각해야 하는 지점인 거 같아요.
청년하고 일을 하려면 그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솔직히 저만 놓고 봐도 평화 씨가 얘기하는 거 100% 이해가 안 되죠. 단어나 상황, 그런 걸 경험해 보지 못한 측면이 많으니까. 그런 것들을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되는 건데, 현재는 그게 안 되고 있는 거죠. 청년 인프라를 만들려면 그런 거부터 깨야 된다고 생각해요.


소통은 양보와 배려에서 시작된다

청년이란 단어로 묶긴 했지만, 20대와 30대는 보는 것, 말하는 것이 또 다르다. 하물며 20~30대 사이에서도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데, 그보다 더 나이 많은 세대와는 얼마나 큰 괴리가 존재할까? 그런 괴리가 해소되지 않으면 기성 세대로 대표되는 관과 청년은 또 다시 반목할 수밖에 없다.


-박지훈: 저번 독서대전에 저희 서점도 참여했는데, 그때 부스를 꾸리면서 무조건 체험을 넣으라는 요구를 받았어요. 자기들은 신경 안 쓰겠다 알아서 해라, 그런데 무조건 체험은 넣어라, 이렇게 말해요. 그 안에 퀄리티라던가 상관 안 할 테니까 일단 넣어, 이런 식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의견을 내더라도 그 위까지 올라가지를 않아요. 공무원분들이 오셔서 얘기를 하는데, 저희가 의견을 냈어요. 이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쪽에서는 이러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저 위에서 자를 겁니다, 이러고만 가셨어요. 답답한 노릇이죠. 행정 쪽에는 그런 벽이 좀 있어요.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는데...


(융통성 없는 관의 일처리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청년들 입장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태도가 아무래도 고압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관과 청년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거라며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김석: 시장님이 젊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장, 이런 사람들이 장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우리가 뭔가 제안하고 자꾸 하자고 해도 컷 되는 게 훨씬 많은 거죠. 그러니까 서로 간의 이해가 필요해요. 질문지에 세대 얘기가 나오는데, 가장 큰 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청년들도 그렇고, 그분들도 그렇고. 그분들이 청년들을 바라보면 너네들은 아직 경험도 미숙하고 뭔가 할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한데 자꾸 뭘 한다 그래, 이런 느낌인 거고. 청년들은 기성 세대를 바라보면서 당신들 힘드셨던 건 아는데 지금 세대는 달라요, 라고만 하니까 의견이 좁혀지지 않고 평행선만 달리는 거죠. 소통의 창구들이 마련되어야지만 이 갈등이나 서로에 대한 이해가 넓혀지는데, 그런 창구는 안 만들고 사업으로만 만나잖아요. 사업을 같이 해야 되니까 일단 만나긴 만나요. 그런데 그 사업의 주도는 청년이 아니라 그 사람들 중심이야, 니네들은 우리가 짜놓은 틀 안에 와서 니네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그게 우리가 원하는 거야, 이렇게 되는 거예요.


(관에서 제안하는 청년 사업들이 그런 식이다 보니 두 세대의 골은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다.)


-김석: 기성 세대한테 무조건 청년들을 이해하라고 하는 건 모순이죠. 당연히 청년들도 그분들의 상황과 맥락을 이해해야 돼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려는 소통의 장이 풍성해졌을 때 청년들이 원하는 쪽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 대표의 말처럼 지금의 관계는 어느 한쪽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들으려 하지 않았던 우리의 잘못이다.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열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길을 모색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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