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23.6 | 기획 [기획]
우리는 그림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그림책 도서관이 된 전주
고다인 기자(2023-06-28 15:09:13)



우리는 그림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그림책 도서관이 된 전주


글 고다인 기자 




불을 뿜으며 달려오는 괴물, 으리으리한 성의 왕자와 공주님, 숲속의 귀여운 동물들까지. 온통 낯선 것들로 가득한 페이지를 넘기며 눈을 반짝거리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엄마 아빠가 세상의 전부인 어린 시절, 우리는 그림책을 통해 처음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그림책의 가치를 기억하기 위해 전주가 거대한 그림책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팔복예술공장, 전주시립도서관, 동네 책방 등 다양한 공간으로 그림책이 우리를 찾아왔다. 그림책의 가치를 기억하기 위해 전주가 거대한 그림책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팔복예술공장, 전주시립도서관, 동네 책방 등 다양한 공간으로 그림책이 우리를 찾아왔다. 제2회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은 5월 12일부터 6월 4일 열렸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기는 그림책 프로그램

주 행사장인 팔복예술공장 이팝나무홀에서는 한국의 이수지, 프랑스의 막스 뒤코스, 일본의 이시카와 에리코 세 초청작가의 그림책 원화 전시가 진행된다. 올해 상반기 전주 그림책 키움터를 통해 양성한 그림책 활동가들이 도슨트로 변신했다. 매일 4회에 걸쳐 작품 해설과 그림책 읽어주는 시간을 마련해 전시 관람에 깊이를 더했다.  


이팝나무그림책도서관에서는 신인 작가들이 선보이는 '시작-작가전'이 열린다. 강혜진, 김지은, 박성은 등 13명의 작가가 그림책 원화와 더미북(초벌북), 드로잉 작품을 선보였다. 전주시립도서관(인후, 평화, 꽃심, 송천, 금암, 삼천)에서는 '전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림책'을 만난다. 전주가 주목한 그림책 작가 6명의 그림책을 전시해 가까운 도서관에서도 그림책도서전을 즐길 수 있다. 


올해는 그림책 작가뿐 아니라 연구가와 출판 편집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그림책 업계 종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원화 전시로 만난 세 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를 비롯해 전주시립도서관과 호남문고, 청동북카페, 잘익은언어들 세 곳에서 전시와 연계한 북콘서트가 함께한다. ‘그림책과 소통’, ‘그림책 장르의 독립성과 확장성’, ‘혐오와 공존에 대해 그림책으로 이야기하기’ 등 그림책의 기본부터 깊이 있는 내용까지 그림책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로 이뤄졌다. 


그림책 속 이야기를 작가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하는 ‘그림책 작가 1인 극장’도 인기를 끌었다. 강미애, 곽민수, 유진, 이예숙 작가가 참여해 직접 캐릭터를 활용한 공연을 펼쳤다. 어린이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한 프로그램으로는 ‘그림책 놀이’와 ‘워크숍’이 신설됐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지역의 그림책 활동가들과 함께 체험하고, 신인 작가들과 미니 그림책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외에도 이팝나무광장에서 5월 12일부터 사흘간 국내 그림책 출판사의 그림책을 접할 수 있는 북마켓을 열어 행사장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림책 속 글과 그림의 상관관계





그림책은 복제됨으로써 완성되는 인쇄 예술이다. 아무리 멋진 그림도 하나의 책으로 엮이기 전까진 ‘미완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작가의 손길이 직접 닿은 원화를 감상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원화에는 그림책에서 느낄 수 없는 색채와 질감, 회화적 매력이 담겨있다. 올해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이수지와 프랑스의 막스 뒤코스, 일본의 이시카와 에리코가 전주를 찾았다. ‘그림책 방정식’이라는 주제로 그들의 작품세계가 고스란히 담긴 원화를 선보였다. 세 작가는 어떤 과정을 거쳐 글과 그림 사이를 연결 짓고 이야기를 완성하는지 들여다봤다. 


글 없는 그림책 ―이수지

대표작 | 『여름이 온다』, 『거울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이수지 작가는 ‘글 없는 그림책’ 작가라 불린다. 글이 없는 대신 책의 물성을 최대한 활용해 여백과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책장을 넘기는 형태마저 이야기의 방식으로 사용한다. ‘그림자놀이’, ‘거울속으로’ 등 페이지가 나눠지는 책의 중심부를 기준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나누는 감각적인 시도를 했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의 강렬함을 담은 ‘여름이 온다’는 작가의 모든 기법이 총망라된 작품이다. 전시관 한편에는 사계 음악이 흐르고, 그림 속 아이들의 웃음은 생명력이 넘친다. 청각 세계를 시각예술로 표현한 것이다. 도화지를 무대라 생각하고 늘 개성 있는 그림책을 선보이는 그는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완결된 글에 더해진 시각 언어 ―막스 뒤코스

대표작 | 『비밀의 집 볼뤼빌리스』, 『비밀의 정원』, 『한밤의 왕국』, 『등대 소년』

반대로 막스 뒤코스의 작품은 모든 면이 여백 없이 가득 차있다. 그 촘촘한 그림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요소를 찾는 과정이 재미 중 하나다. 프랑스 보르도 출신으로, 문학을 전공한 후 미술에 발을 들인 그는 건축가인 아버지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 이야기 서사에는 문학의 양식이, 그림에는 건축적 양식이 묻어난다. ‘비밀의 집 볼뤼빌리스’부터 ‘한밤의 왕국’, ‘등대 소년’, ‘내가 만드는 1000가지 이야기’까지 많은 대표작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로 실제 장소를 모티브로 하는 그의 그림은 사실적인 공간 묘사가 돋보인다. 단순히 건물뿐 아니라 하늘과 숲, 바다 등 자연의 색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해 장면의 시간과 날씨도 가늠할 수 있다. 타고난 이야기꾼답게 완결된 글에 그림이라는 시각 언어를 더해 그만의 그림책을 완성한다. 


글과 그림의 아름다운 조화 ―이시카와 에리코 

대표작 | 『깡통차기』, 『책방 고양이』, 『토끼와 고슴도치의 오늘도 좋은 날』

일본 작가 이시카와 에리코는 ‘깡통차기’, ‘쉿, 마음이 자라고 있어’ 등 30여 권의 그림책을 출간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앞의 두 작가와 다르게 원화 작품의 크기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그는 실제 어린이가 쓰는 커다란 도화지에 연필과 펜, 파스텔 등의 익숙한 재료로 그림을 그린다. 책가방 속에 들어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이유다. 또, 시선과 구도에 따른 다양한 앵글로 주인공의 심리와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긴장감이 필요할 땐 슬로우 모션과 같은 영화적 기법을 더하기도 한다. 감성적인 글과 생생한 그림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우리가 떠올리는 ‘그림책’의 정석을 만들어낸다.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지난해에 이어 2회를 맞은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의 탄생 비화가 궁금하다. 그림책도서전은 전주시 도서관정책과 도서문화팀이 함께 기획, 운영하고 있다. 도서문화팀의 이욱 팀장은 26년 동안 전주 곳곳의 도서관을 돌보며 건강한 책 문화 조성에 힘쓰고 있다. 오랜 시간 사서로서 책에 대한 애정을 쌓아온 그는 이제 그림책에 주목한다.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은 지난 개최 당시 그림책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긍정적인 성과를 보였다. 그럼에도 부족하다 지적된 부분들을 보완해 올해는 한층 더 새롭고 풍성하게 기획했다. 지난해에는 초청작가로 일본의 다시마 세이조가 전주를 찾았지만, 올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 작가 총 3명을 초대해 더 많은 국내외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전주시립도서관 일원에서만 진행되던 행사의 주 무대를 팔복예술공장으로 옮긴 점도 눈에 띈다. 6개 시립도서관과 지역서점에서도 전시와 강연을 진행하며 다양한 공간에서 시민들이 그림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주요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작가와 독자, 출판사, 동네책방 등 참여자의 폭도 넓어졌다. 그림책을 단순히 감상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찾아 읽고 구매할 수 있는 북마켓을 신설했다. 한국그림책출판협회에 소속된 출판사 23곳이 참여해 전시 관람 후 작가의 책을 현장에서 바로 만나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북마켓과 같은 프로그램을 신설한데는 이유가 있다.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이 ‘축제’인 동시에 ‘박람회’적 역할을 수행하려는 것이다. 


“앞으로는 해외 바이어들을 초대해 한국의 그림책을 해외 시장에 소개하고, 현장에서 저작권 판매나 출판 계약 등 산업적인 성과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려 해요.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이 해외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거죠."

 

더 나아가 ‘전주 그림책 어워즈’와 같은 수상 프로그램도 만들 계획이다. 공모와 심사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그림책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또한, 그림책 작가에 한정되었던 강연 프로그램은 번역가와 편집자, 디자이너 등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시민들에게는 다양한 정보를 전하는 동시에 그림책 산업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의미도 있다. 그렇다면 왜 ‘전주’에서 그림책도서전이 열리는 걸까? 그림책과 전주 사이의 연결고리가 궁금해진다. 


“전주는 인구 대비 도서관이 가장 많은 도시예요. ‘책의 도시’답게 그림책 이전에 먼저 ‘책’에 주목했습니다. 이미 다양한 책 관련 행사들이 전주에서 열리고 있는데요. 가을에 열리는 ‘전주독서대전’이 대표적이죠. 전주를 연중 책과 함께하는 축제의 도시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봄에도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책 축제를 고민하다 최근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들이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올해 그림책도서전의 초청 작가로 참여한 이수지는 지난해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했다. 이전에 백희나 작가가 세계적인 문학상 중 하나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데 이은 의미 있는 결과이다. 우리나라만의 한국적인 기법과 서양화 기법이 적절히 섞여 탄생하는 다양한 그림책들은 최근 해외에서 인정받으며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여기서 그는 그림책과 전주를 연결하면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된다는 해답을 얻었다.


이미 순천에서는 전국 최초로 시립그림책도서관을 운영하며 그림책과 관련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원주에서도 ‘그림책 프리비엔날레’를 매년 열고 있다. 그는 전주 역시 국제적인 그림책도서전으로서 자리를 잡아 그림책의 가치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도서관에서 근무하다 보니 다양한 종류의 책을 접하게 되는데, 그림책을 찾아서 읽은 경험은 많지 않아요. 대부분의 어른이 그렇겠죠. 하지만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고정관념에도 이제 변화가 생기고 있어요. 그림책은 어른들의 순수한 상상력을 깨워주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또, 나라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모든 인류가 함께 소통하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에요.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을 통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그림책의 매력을 느껴보길 바랍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