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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 | 기획 [문화로 지역 읽기]
청년들의 깨볶는 고산살이
청년공유공간 청촌방앗간
류나윤 기자(2024-02-07 17:35:08)

완주

완주의 문화는 사실 전주를 제외하고 설명하기 어렵다. 과거 전주와 하나의 지역이었으며, 전주를 감싸는 듯한 지리적 특성 탓에 완주와 전주를 오가며 생활하는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완주군 소속 도지정 문화예술전문법인·단체는 완주문화재단을 제외하면 오페라단인 '뮤직시어터 슈바빙'과 '완주필하모닉오케스트라' 두 곳 뿐이다. 문화저널은 그중 완주군을 실질적인 기반으로 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완주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만났다.

전주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전문 예술 생태계를 구축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특유의 공동체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다. 귀촌한 문화예술인들이 기존 주민들과 어울리며 생활문화를 일으켰고, 여기에 '공동체 문화도시'를 슬로건으로 하는 문화도시 사업이 진행되며 문화재단과 문화도시지원센터가 공동체 문화를 적극 지원한 덕이다. 물푸레공동체, 더나은문화공동체, 씨앗문화예술협동조합 등의 공동체들이 활동 중이며 특히 인형극단 깔깔깔과 극단 청연 등은 학부모 공동체로 시작하여 이제 전문극단으로서의 발돋움을 하고 있다.

또한 전국 최초로 청년전담팀을 만든 지자체이기도 한 완주군은 청년 문화 활성화에도 힘쓰고 있다. 고산과 삼례, 이서에 위치한 청년 공유 공간 '플래닛 완주'를 중심으로 도시의 삶에 지친 청년들이 완주에 내려와 느린 삶을 지향하며 그들만의 새로운 문화를 구축하고 있다. 전북 대부분의 도시가 인구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꾸준히 인구 유입을 보이고 있는 지역인 완주. 그 이유를 문화저널은 완주의 '문화'에서 찾아보았다.


청년들의 깨볶는 고산살이

청년공유공간 '청촌방앗간'



조아란 방앗간지기와 고산 학생들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옛말이 있다. 공동체 문화가 살아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는 공동체 문화가 사라진지 오래다. 이웃과의 정과 공동체 문화를 되살려 낼 수는 없을까. 그런 공간이 완주에 있다.

완주군 고산터미널 바로 옆, 솔솔 풍겨오는 깨볶는 냄새가 유혹하는 곳. 청년 공유공간 '플래닛 완주'의 2호점인 청촌방앗간이 그곳이다. ‘청촌방앗간’은 '청년들의 촌살이를 응원하는 방앗간'이라는 뜻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옛날 방앗간처럼, 고산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지역의 작은 문화들을 일구어 가고 있는 특별한 공간. 이곳을 이끄는 방앗간지기 조아란, 이영임 씨를 만났다.


고산의, 고산에 의한, 고산을 위한

청촌방앗간은 고산의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다. 한 달에 한 번, 손맛 좋은 청년이 준비한 식사를 함께 먹으며 고산살이에 대해 나누는 '방앗간 식탁'부터, 고산 주민들의 오프라인 당근마켓인 '되살림장터' 등 고산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모든 행사의 목적은 주민들의 근황 ‘토크’.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눈다. 완주의 일자리와 부동산 등 완주살이에 필요한 최신 정보까지도 알 수 있으니 고산살이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프로그램이다.

방앗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고산비책'. 고산의 주민들이 직접 고산살이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강연이다. 12년째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조영호 씨, 미소시장에서 '널리널리 홍홍'이라는 잡화점을 운영하는 장미경 씨, 찻집 '지유명차'를 운영 중인 고산의 마당발 박현정 씨 등이 강연을 했다.

“고산에는 특별한 이야기를 가지신 분들이 매우 많아요. 예를 들어 미소시장 근처에서 지유명차라는 찻집을 운영하고 계신 현정쌤은 고산 귀농·귀촌 1세대 시거든요. 10년 동안 고산의 여러 마을공동체에서 활동하셨기도 하고, 지금은 고산의 사랑방과도 같은 찻집을 운영하고 계시니 고산에 대해 모르는 게 없으시죠. 그런 분들의 이야기는 고산에 이주한 청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거든요.”

매주 북바인딩, 민화, 기타, 어반스케치 등 다양한 문화예술 소모임도 열린다. 소모임을 이끌어가는 것 또한 고산 주민들이다. 마음이 맞는 주민들끼리 자발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방앗간에서 직접 기획하여 만드는 모임도 있다. 몇 주간 이어지는 소모임은 고산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또 다른 공동체와 문화기획자를 생산한다.

“소모임 강사는 대부분이 지역 분들입니다. 문화예술을 업으로 삼는 것에 뜻이 있지만, 아직 경력이 없으신 분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발판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죠. 뭐든 처음이 어렵잖아요. 실제로 청촌방앗간의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한 것을 첫 경력으로 해서 활동을 시작하는 분들이 꽤 있어요.”


되살림장터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되도록

이 공간이 특이한 점은 시즌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청촌방앗간은 시즌2로, 문화저널에서도 소개되었던 '림보책방'이 시즌1이다. 다양한 청년들이 직접 공간을 운영하며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하고 공간을 선순환하기 위해 시즌제를 선택했다. 림보책방 시절부터 공간을 자주 사용하던 청년들의 공통된 생각과, 완주군 청년정책팀의 유연한 행정이 얻어낸 결과다. 림보책방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의 여정을 마치고 새로운 공간으로 독립했다. 청촌방앗간은 그 뜻을 이어 2022년부터 운영 중이다.

플래닛 완주의 1호점과 3호점이 완주군 직영인 것과는 다르게 2호점인 청촌방앗간은 '협동조합 와니니'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협동조합 와니니'는 완주군의 청년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함께 공부하던 친구 5명이 만든 단체이다. 이름은 동화책 '푸른사자 와니니'에서 가져왔다. 겁이 많은 사자 와니니가 "나는 약하지만, 우리는 강해!"라고 외치며 동물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는 책의 내용처럼, 서로 의지하며 함께 힘든 일을 헤쳐 나가는 완주 청년들의 모습을 담았단다.

전국적으로 청촌방앗간과 같은 공유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활성화되고 있는 사례는 흔치 않다. 지자체가 앞다투어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건물을 만들어내지만 막상 공간을 운영할 주체나 콘텐츠 발굴은 그 양적 증가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촌방앗간은 마을 공유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협동조합 와니니가 내부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덕분이다. 이제는 주민들 사이에서도 누구나 편하게 가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취재차 방문한 날도 공간은 주민들로 북적였다.

이 공간은 청년 공유 공간을 표방하지만, 청년들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청년들이 사용하지 못하는 낮에는 주로 중장년층과 방학한 청소년들이 이곳을 찾는다. 운영시간이 1시부터 9시인 것 또한 퇴근 후 찾아오는 직장인들 때문이다. 청년들만의 공간이 아닌, 청년이 중심이 되어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겠다는 공간의 취지를 잘 살리고 있는 셈이다. 다른 지역의 많은 귀촌 청년이 주민과의 소통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완주는 청촌방앗간을 비롯한 청년 공유공간들이 중심이 되어 청년들과 기존 주민들의 다리 역할을 하며 귀촌 청년들의 적응을 돕고 있다.

협동조합 와니니는 공간의 후계자(?)를 찾고 있다. 시즌3를 이끌어갈 청년들이다. 고산에 관심 있는 청년이 있다면 청촌방앗간을 직접 찾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 무한한 경쟁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청년세대에게 고산의 삶은 화려하진 않아도 소소하고 재미난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된다는 것을 이곳 청촌방앗간이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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