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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 | 문화이슈
열일곱 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시간과 사람
최명희문학관 운영 마치는 혼불기념사업회 ​
고다인 기자(2024-01-29 10:56:36)


최명희문학관 운영 마치는 혼불기념사업회

열일곱 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시간과 사람




2006년 봄, 고요한 한옥마을 골목에 문학관 하나가 문을 열었다. 그때만 해도 이 동네는 관광객 대신 토박이들이 북적이는 삶의 터전이었다. ‘최명희문학관’이라는 이름의 낯선 공간.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문학관은 대문을 활짝 열고 이웃 어르신들에게 너른 마당을 내주었다. 와서 고추도 널고 배추도 마음껏 씻으시라고. 그렇게 가장 가까운 동네 사람들에게 다가가 ‘혼불’이 읽힐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17년, 차곡차곡 시간과 사람을 쌓아올린 최명희문학관은 전주를 대표하는 인문학 공간이 되었다.

문학관은 매일 살아있어야 한다

작가 최명희는 수천수만 자의 우리말로 우리 혼을 매만지는 장편소설 「혼불」을 일생에 걸쳐 집필했다. ‘한국 혼을 일깨우는 이 땅 문학사의 영원한 기념비’로 통하는 이 작품과 함께 그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1997년 「혼불」을 출판한 한길사가 중심이 되어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결성됐다. 2000년 5월, 이 모임은 ‘혼불기념사업회’라는 이름을 얻으며 확대되었다. 이들은 전주시로부터 최명희문학관을 위탁 운영 받아 작가의 숭고한 문학정신을 기리는 동시에 그가 문학을 매개로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전국에는 100여개의 문학관이 있고, 전북에만 현재 10개의 문학관이 운영 중이다. 그러나 몇 곳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박물관의 역할에 그치는 현실이다. 예산은 부족하고 활동력 있는 전문 인력이 없는 탓이다. 최명희문학관은 계속해서 살아있다는 표시를 도시에 남기고 싶었다. 전시품들을 매년 조금씩 바꿔나가고, 다른 지역을 돌며 문학 행사를 벌였다. 문학상과 학술세미나, 글쓰기 교실 등 없는 살림에도 매년 관련 콘텐츠들을 발굴하며 활발히 움직였다. 소설가 최남일은 말했다. “최명희문학관은 살아 있더군, 꼭 말을 걸어오는 것 같더라니까.”라고.


문학관의 모든 프로그램은 최명희의 생과 닿아있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이라 말하던 그는 컴퓨터가 아닌 손글씨로 긴 소설을 써내려갔다. 여기서 출발한 것이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이다. 개관한 해부터 꼬박 17년을 이어오며 문학관의 대표 콘텐츠가 되었다. 문학관의 본래 역할이 그렇듯, 지역의 문화예술인이 모여드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최기우 전 관장은 최명희 작가는 문학인으로서 어마어마한 행운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단 한 번도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채 도서관 어딘가 묻혀있는 지역 작가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최명희문학관은 ‘작고 문학인 세미나’ 등을 통해 조명 받지 못한 문학인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역할에도 충실했다. 전시장에는 동네 예술가들의 흔적이 묻혔다. 박금숙 공예가는 여고생 시절 소설 쓰는 최명희를 닥종이 인형으로 만들고, 지용출 화가와 이승철 서예가는 작품의 제목들을 그림과 글로 형상화했다. 판화가 유대수는 혼불 속 마음에 남는 문장을 목판에 새겼다. 최명희의 삶과 작품이 또 다른 예술과 만나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최명희문학관은 한 명의 작가와 작품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문학과 미술, 음악,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으로서 문학관의 의미를 더했다.




다음을 맞이하는 최명희문학관

혼불기념사업회는 2023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최명희문학관의 운영을 마쳤다. 더불어 사업회의 활동 역시 마무리한다. 문학관이 세워지기 이전부터 24년의 긴 시간을 최명희와 함께 걸어온 이들은 앞서 돌아본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 문화의 저변을 넓혔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어려움도 많았다. 혼불기념사업회는 별도의 수익구조가 없는 순수 민간단체다. 전주시가 지원하는 위탁 기금은 최저임금 수준의 인건비와 기본 운영비 정도였기에 재정의 어려움은 늘 따라오는 일이었다. 운영 내내 저작권 문제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하는데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이만큼 지켜올 수 있었다. 긴 세월 문학관에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방명록이 탑처럼 쌓여 한쪽에 전시되어있다. 수많은 이름의 기록들이 그 동안 지나온 시간을 증명해주는 듯 하다. ‘새 마음을 한 모금 가지고 갑니다.’, ‘최명희 작가님 그립습니다!’ 저마다 진심어린 감상과 응원을 보내고 있다.


2024년부로 작가 최명희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유족들이 최명희기념사업회라는 이름으로 문학관의 운영을 이어간다. 오랜 세월 입지를 다져온 프로그램들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최명희의 생애와 작품에 담긴 의미를 많은 사람에게 나누고자하는 문학관의 취지는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다. 최기우 전 관장은 문학관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곳을 설명할 때면 마지막에 늘 이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최명희 선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로 지금일 겁니다. 선생을 기억하고 또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와주신 여러분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최명희 이야기를 나누실 여러분들 덕분에 최명희 선생은 지금이 가장 행복할 겁니다.” 앞으로도 최명희 작가의 행복한 순간이 이어지길, 오랜 시간 시민 가까이에서 역할을 다한 최명희문학관이 위기가 아닌 새로운 전환의 기회를 맞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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